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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의 효율적 배분

[과학칼럼]연구비의 효율적 배분
입력: 2008년 04월 03일 18:01:59
 
1980 년대말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대학 교수로 임용되었을 무렵 필자를 어리둥절케 한 두 가지 말이 있었다. 하나는 연구비를 지원받게 되었다고 하면 술을 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 강의가 없는 날에도 매일 학교에 나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만큼 연구지원이 열악했다.

- 이공계교수 30%에 1억씩 지원 -

우리나라 연구개발비는 규모 면에서 3조원 남짓하던 당시에 비하여 최근 거의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절대 액수면에서도 세계에서 7번째로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고, 연구비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바뀌어 연구비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의 총액도 크게 늘었고 연구비 지원 사업의 종류도 늘었다. 그러나 대학 연구 지원을 놓고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개인·소규모 연구 지원이 부족하고 다수의 연구 지원 사업 선정률이 1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구비를 지원받는 규모에서나 연구 업적을 놓고 대학들간 견해차가 있다는 것이다.

상위권 대학들은 재원이 부족하니 우수대학에 선택적으로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대학에서는 몇몇 학교만 잘 된다고 연구 수준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변을 넓히기 위하여 많은 대학에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쪽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 모두 일리가 있다. 연구비 규모가 적었던 10여년 전에는 연구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따라서 상위권 대학에 지원이 집중되었다가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는 지방 대학에 지원을 늘리는 정책을 시행하여 정부 지원 연구비의 40% 수준에 이르는 예산이 지방에 투입되었다. 대학에 연구비다운 연구 지원이 된 게 불과 20년이 못 되지만 양쪽의 방법을 정부에서는 모두 시행해 본 경험이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양쪽의 주장은 팽팽히 맞서 있다. 혹자는 지난 정부에서 지방에 예산을 늘리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이번에는 선택과 집중으로 가지 않을까 예상하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부의 지방 연구비 지원은 40%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하면서도 효율성을 위하여 나누어 먹기식의 연구비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고 언급하였기에 선택적으로 집중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 같다.

- 저변 넓히기·선택과 집중 병행 -

그러면 이러한 양쪽의 지원방법은 대립적인 것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닐 수도 있다. 이공계 대학 교수는 전문대학 등을 포함해서 약 4만5000명으로 추산된다. 그렇기에 이들 중 약 3분의 1에게만 연구비를 1억원씩 지원한다고 해도 1조5000억원으로 올해 10조8000억원인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15% 정도다. 그리고 1만5000명의 대학 교원이라면 지방에 있는 어느 정도 연구능력을 갖춘 교수들은 모두 포함될 것 같다. 그리고 1인당 1억원의 연구비는 대학 수준에서 상당히 큰 액수다. 이러한 전체적인 통계를 보면 연구 능력을 갖춘 교수들에게 기본적인 지원 및 선택과 집중의 지원을 병행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면 현재 무엇이 문제인가? 그동안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또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급조한 다양한 연구지원 사업들에 의해 정부의 대학 연구지원 사업 체제가 무척이나 복잡한 것으로부터 기인한 듯하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한 사업이나 우수한 학자나 연구집단을 지원한다고 해야 주목을 받고 예산 확보가 쉽기 때문에 목적 지향적 사업과 우수 학자 지원 사업들이 과도하게 만들어진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업들의 선정방식은 과거의 연구업적이 매우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것 같지만 뛰어난 연구업적이 있으면 연구비보다는 상을 주어야 한다. 연구 지원 선정에서 연구자의 업적보다 연구 자체의 가치가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이전에 뛰어난 연구업적을 가진 위대한 과학자보다는 무명의 신인에 의해 이뤄진 경우가 많다. 아인슈타인도 무명으로 스위스 특허청에서 근무하면서 20세기의 최대 과학적 발견을 남겼고, 이로 인해 최고의 과학자가 되었다.

〈 전승준 고려대학교·화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