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짧은 신문 기사 하나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한 식품회사에서 선천성 대사질환으로 밥을 먹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저단백 즉석밥’을 출시했다는 기사였다. 개발비만 8억원이 들었지만 예상 고객은 단 200명, 연간 예상 매출액은 5000만원에
불과해 ‘영원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없는’ 특별한 제품이었다. 여기엔 사연이 있었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다섯 살 난 딸은 페닐케톤뇨증(PKU)이라는 질환을 앓고 있다. 때문에 보통 밥을 먹지 못해 맛없고 비싼 일본제 특수 밥만 먹어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저단백밥의 개발을 건의했고, 회사가 이를 기꺼이 수용한 것이었다.
내가 일하는 신문사의 편집회의에서도 이 기사가 화제에 올랐다. 우리는 지면 하나를 통째로 할애해 그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일간지의 짧은 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고, 그가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 같았다(우리 신문의 주된 독자는 의사들이다). 며칠 후 기자가 작성한 인터뷰 기사가 내게 넘어왔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기사를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이미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다음 두 가지 내용 때문이었다.
그 의 말 하나. “정식 출시를 앞둔 추석 무렵에 시제품을 환아(患兒)들의 가정에 한 상자씩 선물로 보내주게 됐습니다. 환우회 명단을 보고 주소 확인차 전화를 돌렸는데, 한 집에서 그러더군요. 비싼 쌀밥 싸게 주는 것은 좋은데, 우리 아들은 벌써 전분미(옥수수가루로 만든 가짜 쌀)에 익숙해져 있고 솔직히 그 밥값도 대기 버겁다고요.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정부도 알아야 해요. 저는 지금까지 50번 넘게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 한 번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개발된 제품의 가격은 1800원. 일본 제품의 절반 이하다. 하지만 그 비용도 부담하기 어려운 가정이 많다. PKU 외에 다른 여러 희귀질환의 경우에도 반드시 특수한 ‘식품’을 먹어야 하는데, 건강보험 혜택은 없고 정부의 다른 지원도 별로 없다. ‘희귀’ 질환이라 그 숫자가 많지 않으니 사실 아주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심했다. ‘어렵다’는 답장이라도 좀 보내주지.
그의 말 둘. “민간 기업에서 돈 들여 밥은 만들었으니, 국가에서 저단백 밀가루 개발을 지원해 줬으면 합니다. 아이들 밥 먹을 때 전이라도 부쳐 먹이게요. 밀가루가 있으면 과자도, 빵도, 국수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우리 아이들 잘 키울 수 있게 정부도 의사선생님도 도와주세요.”
국산 특수 분유는 이미 있었고 이번에 밥도 개발됐으니 ‘됐다’ 싶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왜 몰랐던가. 의학을 공부했으니 수많은 희귀질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나는 왜 환자들의 ‘삶’에는 무관심했던가.
손 해를 감수하고 저단백밥을 만들어 준 CJ제일제당에, 역시 손해를 감수하고 오래 전부터 특수 분유를 생산해 온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글을 높으신 분들이 꼭 좀 읽어줬으면 좋겠다. 대통령님, 장관님들, 국회의원님들, 그리고 밀가루 회사 사장님들도.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의사
중앙일보 2009.11.10일
이 회사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다섯 살 난 딸은 페닐케톤뇨증(PKU)이라는 질환을 앓고 있다. 때문에 보통 밥을 먹지 못해 맛없고 비싼 일본제 특수 밥만 먹어야 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저단백밥의 개발을 건의했고, 회사가 이를 기꺼이 수용한 것이었다.
내가 일하는 신문사의 편집회의에서도 이 기사가 화제에 올랐다. 우리는 지면 하나를 통째로 할애해 그를 인터뷰하기로 했다. 일간지의 짧은 기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고, 그가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 같았다(우리 신문의 주된 독자는 의사들이다). 며칠 후 기자가 작성한 인터뷰 기사가 내게 넘어왔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 기사를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이미 감동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다음 두 가지 내용 때문이었다.
그 의 말 하나. “정식 출시를 앞둔 추석 무렵에 시제품을 환아(患兒)들의 가정에 한 상자씩 선물로 보내주게 됐습니다. 환우회 명단을 보고 주소 확인차 전화를 돌렸는데, 한 집에서 그러더군요. 비싼 쌀밥 싸게 주는 것은 좋은데, 우리 아들은 벌써 전분미(옥수수가루로 만든 가짜 쌀)에 익숙해져 있고 솔직히 그 밥값도 대기 버겁다고요.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정부도 알아야 해요. 저는 지금까지 50번 넘게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는 메일을 보냈지만, 답장 한 번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개발된 제품의 가격은 1800원. 일본 제품의 절반 이하다. 하지만 그 비용도 부담하기 어려운 가정이 많다. PKU 외에 다른 여러 희귀질환의 경우에도 반드시 특수한 ‘식품’을 먹어야 하는데, 건강보험 혜택은 없고 정부의 다른 지원도 별로 없다. ‘희귀’ 질환이라 그 숫자가 많지 않으니 사실 아주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너무 무심했다. ‘어렵다’는 답장이라도 좀 보내주지.
그의 말 둘. “민간 기업에서 돈 들여 밥은 만들었으니, 국가에서 저단백 밀가루 개발을 지원해 줬으면 합니다. 아이들 밥 먹을 때 전이라도 부쳐 먹이게요. 밀가루가 있으면 과자도, 빵도, 국수도 먹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우리 아이들 잘 키울 수 있게 정부도 의사선생님도 도와주세요.”
국산 특수 분유는 이미 있었고 이번에 밥도 개발됐으니 ‘됐다’ 싶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왜 몰랐던가. 의학을 공부했으니 수많은 희귀질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나는 왜 환자들의 ‘삶’에는 무관심했던가.
손 해를 감수하고 저단백밥을 만들어 준 CJ제일제당에, 역시 손해를 감수하고 오래 전부터 특수 분유를 생산해 온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 글을 높으신 분들이 꼭 좀 읽어줬으면 좋겠다. 대통령님, 장관님들, 국회의원님들, 그리고 밀가루 회사 사장님들도.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의사
중앙일보 2009.11.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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