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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zchem.org/wizchem 잔소리

연구기관의 비정규직

“우리 연구실은 전체가 13명 중에 정규직이 연구책임자인 저 하나뿐입니다. 계약직 11명과 수련 과정의 연구생 1명이 운영하죠. 지금도 이 친구들(연구원들) 고용이 불안정한데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 2년후에 다 자르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연구는 누가 하죠? 도대체 누가 이런 법을 통과시켰는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대덕연구단지 연구책임자 ㅎ 박사)

비 정규직법이 시행된 7월, 이랜드 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돼 우리 사회가 뒤숭숭한 가운데 대덕 연구 단지에서는 또 다른 파동이 일고 있었다. 그 진원지는 바로 이공계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이었다. 취재 현장에서 만난 몇몇 연구원들은 올해 초부터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비정규직 문제를 걱정했다고 했다.

2000 년부터 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했다는 한 여성 연구원은 그동안 연구실을 다니며 두 아이를 낳아 길렀고 세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고용돼있었지만 그는 지난 7년 동안 거의 직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해 왔고 자신의 의사와 반해서 연구원을 그만두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든지, 아니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 재 출연 연구소의 사정으로 봐서 정규직 전환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선택은 자명하다. 생명공학연구원이 아닌 다른 직장을 찾든지 비정규직 예외 사유에 들어가는 학생이나 박사 학위자로 변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것이나 이 연구원에게는 여의치 않은 일이다. 지난 7년간 생명과학 연구자로 자부심을 갖고 실험실에서 일해 왔는데 결과적으로는 대책 없이 집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뿐인 셈이다.

과기부 산하기관, 정규직 전환 비율 8.6%에 불과

과학기술부 산하 34개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전체 연구원은 1만9146명이다. 이중 정규직은 63.8%에 달하는 1만2천210명이며, 비정규직은 36.2%인 6천936명이다.

비 정규직 6천936명 가운데 기간제 계약은 4천278명이고, 파견용역 직원은 2천658명이다. 문제가 되는 기간제 계약직들은 대부분 이공계를 졸업한 석사급 연구원이다. 이들 중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사람은 고작 368명이다. 약 8.6%로 전체 공공기관의 평균 전환율 34.8%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정부는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6천742명 중 7만1천861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과기부는 비정규직 인원 4천278명 중 2년 이상 근무한 951명을 추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기획예산처에서는 368명을 무기계약 전환직으로 결정했다.

노 동부에서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2006년 8월)에서 무기계약직 전환 예외 규정에 따랐다는 것이다. 예외규정 중 2번째 항 “사회적으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해당 직종의 고유의 제도로 인해 기간제 근로 형태로 계약하는 경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해당 직종의 고유의 제도’란 무엇인가. 바로 과학계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PBS이다.  

누가 PBS를 도입했는가

지 금부터 10여 년 전, 그러니까 1996년 과학계에 연구과제중심 시스템, 즉 PBS가 도입됐다. 당시 정부에서는 출연연구소의 경쟁력을 도모하고, 선진 과학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PBS는 도입 초기부터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면서 정부 출연연구소를 옥죄는 ‘악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서도 마찬가지다. 출연 연구소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연구원장과 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 과제 책임자와 개별 계약을 한 것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보호해줄 비정규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 부의 이 같은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현 출연 연구소의 상황에서 PBS 제도 하에 고용된 연구원들을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으로 분류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낮은 반면 2년만 고용하고 해고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될 경우 2년마다 새로운 인력으로 대체해야할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기획예산처 김성진 과장은 “과기부 산하의 연구원들의 문제는 현재의 비정규직 법안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며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기피 해결은 출연연 처우개선부터

대 덕 연구단지의 연구소 경영자들 또한 비정규직 법 시행 이후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원 뿐만 아니라 화학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등은 지난해 말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TFT 팀을 구성해 매월 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해왔다. 문제는 출연 연구소의 직원들이 PBS에 묶여있는 한 연구소 자체 예산으로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 덕연구단지의 한 연구소가 조사한 비정규직 실태에 따르면 이 연구소의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정규직의 58%에 불과한 연봉을 받고 있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옛 과학기술노동조합)의 이광오 정책국장은 “만약 비정규직 연구원이 이를 부당한 차별이라고 보고 법에 호소한다면 연구소가 100% 패소할 것”이라며 “몇몇 연구소 경영진들 또한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지만 (연구소 입장에서도 해줄 게 없으니) ‘배째라’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PBS 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과학기술부나 기획예산처의 공무원들도 공감하고 있었다. 과기부에서 출연연구소를 담당하는 한 사무관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게 독일식 PBS 제도를 도입한 것이 출연 연구소의 문제”라고 말했다. 기획예산처 담당자들도 출연 연구소의 특수한 고용제도 때문에 현재의 비정규직 법으로 이 문제를 풀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심지어 김우식 과학기술부장관 겸 부총리 또한 출연연 사기 진작에 관심이 많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현 장 연구원에서 박사급 과제책임자, 출연연 연구소장과 과기부총리까지, 모든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왜 PBS는 아직도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일까.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누가 나서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바로 이 시점에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할 일이다.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 ejlee@kbs.co.kr

* 이 글은 월간 과학과 기술 8월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뉴스등록시간 : 2007-08-13 오후 2: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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