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izchem.org/wizchem 잔소리

[펌] 학력사기와 학력 철폐

학력 차별 철폐는 잘못된 주장이다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100)


유명 인사의 학력 사기 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특히 학력은 물론 객관적인 능력 검증도 쉽지 않은 예체능 분야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사설 학원가의 유명 강사들의 학력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모든 것이 ‘실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 탓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인 모양이다. 실력이 있더라도 그럴 듯한 학위가 없으면 제대로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이 사람들에게 학력을 속이도록 만드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력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근본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학력 사기는 사회의 탓이 아니다

학력 철폐 주장은 자칫하면 자신의 학력을 속인 파렴치범의 잘못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만들어놓은 사회가 잘못이라는 주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학력을 속여서 부당한 명예와 이익을 챙긴 것은 심각한 도덕적 잘못임에 틀림이 없다. 결코 ‘그 정도의 거짓말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선 아무 의도도 없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부당한 명예와 이익을 챙기려는 명시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실정법을 어긴 범죄 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해당 기관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했고, 의도적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려는 사기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력 철폐 주장이 잘못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좋은 학력을 쌓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엄청나게 투자한 사람들의 의욕을 꺾어 버리고, 노력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명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본인과 가족의 경제적 투자와 희생도 만만치 않다.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투자도 대단하다.

물론 노력하고 투자한다고 유명 대학의 학위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개인의 기본적인 소양과 능력도 꼭 필요하다. 좋은 학력은 오랜 기간 동안 어려움을 극복해서 목표를 달성한 사실을 상징한다는 뜻이다.

그런 경력이 우스갯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유명 대학 재학생의 부모에 대한 통계를 근거로 ‘일류 대학의 학력은 부모의 영향력으로 사는 것’이라는 주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을 그렇게 비하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입시 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정당한 노력으로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을 한꺼번에 싸잡아서 모욕하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주장이다. 자칫하면 지식기반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고급 인력의 양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기도 하다.


진짜 전문가를 가려내지 못하는 사회

물론 좋은 학력을 가졌다고 실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학력에 어울리지 않게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좋은 학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 중에도 놀라운 실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을 중퇴하고도 세계적인 거부로 성공한 빌 게이츠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 중에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우리 사회가 학력만을 중시한다는 주장이 반드시 정당하지 않다는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다.

학력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진짜 이유는 우리 사회가 개인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과 일부 사회지도층의 역량이 문제가 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미술평론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언론이 만들어 놓은 우상(偶像)이었다. 신문과 텔레비전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서울에서 근무를 하면서 미국의 유명 대학을 나왔다는 기막힌 주장이나, 대학이 설립되기 전부터 학교를 다녔다는 엉터리 주장을 압도해버렸다. 언론이 검증을 했을 것이라는 사회적 기대를 언론 스스로가 무너뜨려 버린 경우다.

언론의 능력 부족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은 또 있다. 요즘도 일부 언론이 어느 치과의사가 주장하는 물리학 이론이 ‘노벨상 0순위’라고 허풍을 떨어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도무지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학 상식만 가지고 있어도 읽어 내려갈 수가 없을 정도의 황당한 이야기가 언론에 의해 기막히게 포장이 된 것이다. 그런 경우는 세탁기, 공기청정기, 정수기 등에서도 넘쳐나고 있다. 과학 상식을 외면한 우리 언론이 기막힌 사기꾼을 도와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의 고위 관료를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능력 부족에 의한 폐해도 심각하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학력과 능력을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방법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학력과 경력, 그리고 확인하기 어려운 실적을 내세운 인물이 활개를 치고, 그런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오히려 비난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학력 사기는 지식기반 사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학력 차별이 그 원인일 수는 없다. 언론과 사회지도층이 진정한 실력을 확인하고 검증하겠다는 자세를 갖추지 않고, ‘유행’에 휩쓸리는 잘못된 관행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학력 사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력 차별 철폐가 아니라 언론과 사회지도층의 자각이다.

[자료출처]
사이언스 타임즈
http://www.sciencetimes.co.kr/data/article/22000/0000021133.jsp?WT.mc_id=sc_newsletter&WT.linkid=0000021133&WT.senddate=20070815

'wizchem.org > wizchem 잔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토류  (2) 2008.01.22
연구기관의 비정규직  (0) 2007.08.18
강의를 영어로?  (0) 2007.07.28
대학원 예약입학 및 학석사 연계 입학 장학금 안내  (0) 2007.05.27
[펌] 교과서와 치약 고르기  (0) 2007.05.25